박노해 시인의 분쟁지역 사진전이라는 타이틀을 처음 들었을 때 비뚤어진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분쟁지역의 보도사진이나 종군기자 사진들은 이것이 조작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실제로 조작되기도 했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가득했다.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에게 그 차디찬 렌즈를 들이대는 행위는 비인간적이기 그지없다. 시인의 사진전도 그 비인간적인 행위가 반복됐겠거니 싶었는데 공개된 몇 장의 사진에서는 기대했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이미지가 담겨있었다. 되려 평화롭기까지 한 몇 장의 사진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홈페이지의 글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몇 번이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오히려 자극적인 장면에는 다가가지도,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그 이미지를 담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도, 진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또 한 번 무릎 꿇었던 이야기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수차례 같은 곳을 찾아가고, 아이들과 공을 차주고, 함께 웃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울어주며 찍었던 사진을 인화하여 꼭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결국 작가는 시로 유명해졌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줄곧 얘기했던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특히 이 사진전에 있어서는 10년의 세월을 그들을 감싸며 그들과 함께 묵묵히 걸어 나갔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왜 이런 사진전을 여는지 궁금해졌다. 결국엔 전시회를 위해 그 경험과 사진들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만 장의 사진 중에서 이 사진전을 위해 단 몇 장의 사진을 선별할 때는 결국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사진을 골랐을 것이고, 그것이 조작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종군기자들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내 생각과 시선은 하도 많이 비뚤어져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글을 더 읽다보니 이미 매체에서 그런 질문을 했었고, 나는 시인의 답변을 보고 다시 한 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수만 장의 사진 중에는 소위 말해 특종이 될 만한 사진들도 당연히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객이 보고 성찰할 수 있는 사진을, 그리고 낯선 사회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진을 골랐다고 한다. 지방에 있어서 사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이 이야기를 보고 당장 작가와의 대화를 예약하고, 차편을 예약했다.
그리고 시인은 늦은 저녁 그곳에서 이야기했다. 구호와 도움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노라고, 동정하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내 가슴 뛰는 삶을 위한 대상으로도 바라보지 않았노라고. 난 그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세계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충격에 빠졌다. 나름의 시각으로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경멸 혹은 분노했음에도 나 자신은 그 사진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던 것인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같잖은 다짐을 하며 결국 그 이미지를 이용했던, 내 가슴뛰는 삶을 위해 그들의 현실을 이용했던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시인이 말했던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곧바로 시가 되었기 때문에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지만 모두가 내 생각을 흔드는 말들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이 사진 하나 하나에 소설책 하나만큼의, 혹은 그보다 더 큰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모른다는 이야기, 사진 하나에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정말 동의한다. 나는 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이 사진전도 자주 찾는 천체사진가 권오철씨의 홈페이지에서 후기를 읽고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왜 홍보하지 않는가. 다음 사진전은 우리가 홍보하겠다.) 내가 찍은, 친구들이 찍은 별사진들을 보다보면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수히 떠난 관측회들, 그 별들이 흘렀던 시간만큼의 우리의 이야기와 웃음과 추위와 때로는 우주의 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는지 알고 있고 그 것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쭙잖은 비교지만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그곳의 진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만, 사진에 담긴 그 소설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시회의 캡션에서도 밝히지 않고 말을 아낀다. 작가와의 대화가 끝나고 몇몇 사진전에 대해서 그 소설 같은 이야기, 그러나 그들에게 현실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으려고 했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시인과 중동지역 사람들의 너무도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각과 말을 접하며 깜빡 잊었던 분노를 지금에서야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그렇게 아름다운 생각과 말을 잠시 잠깐 감춰둬야 할지도 모른다. 나같이 모자란 관람객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우리가 느끼고 생각해야 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분노를 잠시 잊게 될지도, 망각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면서도 나와 우리의 목소리는 파병을 막기도, 미국의 선전포고를 막기도 미약했다. 언제나 느끼던 나약함과 패배감이었다. 전쟁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의 생각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이렇게 해야 뭐가 달라질까.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패배감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 뒤로 숨어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다보니 우리는 지금 그 힘을 모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사진전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이고 또 그 마음들을 나누다보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세상은 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랜 시간 중동의 그들은 피 흘리고 아파했지만 결국 그들이 간직한 선한 마음과 삶의 양식으로 다시 자신의 뿌리를, 대지를 되찾을 것처럼.
이것은 좋은 사진인가 나쁜 사진인가를 논하는 사진전이 절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사진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울림을 또 울림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들이 모두 그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날까지 기도하고 고민하고 또 움직일 것이다. 그들이 모두 그 땅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계속 고민할 것이다. 아직까지 생각이 크지 않아 나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전을 보고 오라고, 사진전의 이야기를 듣고 오라고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진전을 열어 달라. 힘이 없는 우리도 나눔을 행할 수 있도록.
올해에 사진전이 또 있을 것이라고 들었다. 사진전에 찾아 전시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연달은 전시회에 재미를 들렸다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걱정이다. 이번 전시회를 함께 나눈 이들이 그게 아님을 말하고 다니면 되겠지만 말이다. 속된말로 쉴드를 쳐줄 것이다(여기서 궁금, 시인은 어찌 그런 수많은 최신 언어들을 습득하고 있는지, 질문시간에 궁금한 점 중 하나였으나 그 시간이 귀해 감히 이런 어린 질문을 여쭙지 못했다. 쉴드쳐준다는 말도 알고계실까?) 그리고 앞으로의 전시도 이번처럼 작가와 친밀하게 소통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적 약속은 꼭 지키신다니 전시회에 매일 오겠다는 약속, 그것이 어렵다면 작가와의 대화라도 자주 하겠다는 약속을 미리 해주시기 바란다.
집에 돌아와 동정의 마음이 아닌 그들을 진정으로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록의 부록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 그 어느 책보다 정말 열심히 읽었다. 사실 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한 학기 내내 강의를 듣고, 과제도 참 많이 했는데, 그때 내 마음은 고작해서 동정, 행동 없는 분노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한 공부가 정말 부질없다. 대학생 나눔문화가 곧 대학에 들어가서 활동을 한다고 했는데 고귀한 생각이 오해받을까, 외면 받진 않을까 걱정이다. 역사를 경험하지 않고 근현대사는 선택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세대에게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됐고, 사회적 성공만 이야기하는 대학은 그들을 외면한다. 그러나 너무도 가치 있는 것이기에, 또 함께 모을 힘이 필요하기에 모쪼록 잘 활동하길 바란다.
전시장에서 하지 못하고 늦게서야 회원가입을 하게 된 것은 생각이 복잡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다음날 바로 직업을 얻기 위한 면접 때문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중에 가치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면접이었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에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보니 결국 힘을 모으자는 이야기인 것 같다. 꼭 그 해답이 나눔문화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바른 생각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실천을 하고, 표를 던지고, 내 아이들을 기르고 하는 모든 움직임들은 느리지만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자기에도 모자랐을 저녁버스 안에서 사진전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고 그 생각을 잃을까 녹음하고 또 녹음했다. 적는 순간 잃을까 택한 녹음이었다. 이런 순간을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정말, 정말 뭐라고 말해야할지 단어를 선택하기도 어렵다.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죄책감이 들고 감사하다고 하기엔 그 감상이 가볍다. 단지 앞서 말한 대로 더 많은 전시를 부탁드린다는 주제 넘는 말씀을 드리며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