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해 가장 절실한 물음을 품고 있는 대학생들과 박노해 시인의 대화시간
사진전의 작가와의 대화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인생상담^^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진지한 생의 물음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
3부분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첫번째 부분은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첫 자유 앞에 '내던져진' 대학생들에게
좀 더 멀리 국경너머로 '진로'를 정한 친구들에게
두번째 부분은
이미 대학생활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친구들에게
내가 변해간다고 느끼는 그대에게
세번째 부분은
그 모든 친구들에게 박노해 시인이 만난 중동의 젊은이들이 전하는 말
그리고 박노해 시인이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대학생들과 박노해 시인의 대화, 그 두번째 여행 시작합니다

등록금이 비싸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중입니다.
인생에 단 한번뿐인 청춘, 멋진 시기라고 하는데,
그냥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대학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대학의 현실은 정말 슬픕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다닌 사람? (절반이상…)
중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는 살인적인 조련이죠?
자, 그리고 대학에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가서 취업할 때까지 비용 계산해보셨습니까?
엄마 아빠 몇 년 노동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엄청난 노동도 끝없이 상승되고 있어요.
경주마처럼 다 뛰어가니까요.
스펙 쌓지 않으면 사람 값도 못하죠.
영어 해야죠. 배낭여행 안 하면 바보 취급 받죠.
그러다보니 연애할 시간도 없죠. 연애할 때쯤 되면 또 스펙보죠.
어마어마한 비용이 끝없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새 서울대, 연고대 특정학과 빼고 나면 취업됩니까?
또 대학원 가야죠. 또 부모 등쳐야죠.
알바한다고 시급 4천원, 6천원에 인생 팔아야죠.
그래서 취업했어요. 조금 하다보면
'이게 아니야, 내가 이 짓 하려고 대학 다닌 거 아니야',
그럼 또 유학가거나 대학원 가야죠. 그러고 나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제가 하나 여쭤볼게요.
마음껏 푹 자고 마음껏 뛰놀고 발목이 시리도록 대자연을 걷고
마음껏 꿈꾸고 해본 사람 있습니까?
"......"
너무 바쁘잖아요. 느낄 여유도 없이 달리는 거죠. 앞으로 갈수록 빨라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시인입니다.
시인은 단 한 줄로 독자의 심장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전광석화 같다는 시인조차도 이 속도가 숨이 막힙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스피드를 우리 몸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뒤떨어지지 않게 달리고 뛰고 그렇게 해서 주어지는
삶의 퀄리티는 얼마나 좋다고 할 수 있는가? 삶다운 삶이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생각 좀 해보려고 휴학하면 또 머리가 복잡해지시죠.
생각할 공간과 여유도 없고,
순간 한가한 시간이 찾아와도 갑자기 동떨어진 것 같고,
버려진 느낌이 들죠. 괜히 전화기 만지작거리고..(웃음)
우리 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저하고 밥 한번 먹으려면 스케줄 표를 봅니다.
이 시대의 속도는 가만히 생각하는 것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정말 불행합니다.
대학 때 해야 할 일은
큰 대, 배울 학, 큰 물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학 때만 누릴 수 있는 전 사회적으로 공인된 특권입니다.
“내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끝없이 던지고 부딪혀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유보하고 내려놓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트랙에서 벗어나 초원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경주마입니다.
주어진 트랙에서 앞만 보고 집중적으로 달립니다.
명문대 간 애들, 유학 간 애들 보면 기가 죽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하면 값비싼 사료 먹고 좋은 조련사 만날까
고민하고 명문대 가려고 발버둥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대가 친구를 이기고, 경쟁력 쌓고, 목숨 걸고 달려봤자,
결국 트랙임을 알아차리는 것.
경주하다가 삶을 살 틈도, 생각할 틈도,
청춘과 한번뿐인 좋은 때를 즐길 틈도 없는
트랙을 벗어나서 초원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것이
대학생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셨을 때나, 세계 분쟁현장에서 사진을 찍으실 때나
선생님의 마음은 늘 한결같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교 4학년인데, 오늘 사진전을 보면서도
순간 순간 반성은 하지만 소신을 지켜나가기는 힘이 듭니다.
선생님은 유혹도 많으셨을 텐데, 어떻게 소신을 지키며 살아오셨는지요?
제가 썼던 시 중에 첫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람은 첫마음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내 인생은 우주 별에서 딱 하나 존재하는 것이고
다시 올 수 없는 것이니 한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죠.
그것은 원래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재였거든요. 자기만의 고유성과 개성을 타고 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순된 사회현실에 대한 감수성과 직감이 있습니다.
의미 있고 선하고 아름답고 의롭게 살고 싶다.
그런 첫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봐요.
작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나에게 미모가 주어져 있다면 그것은 힘없고 작은 사람들에게
그 미모를 통해 책임을 가지라는 선물일 수 있고,
내가 지식, 집안, 재능을 타고 났다면, 바로 그것이 작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라는 놀라운 선물일 것입니다.
순간 순간 반성이 된다는 건, 돌아보게 된다는 건
첫마음이라는 나를 비춰볼 거울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더 불행한 것은 요즘 고등학생들은 첫마음 조차 빼앗겨 버렸습니다.
“꿈을 찾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거든요.
아주 좋은 부모님들도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라고 이야기하죠?
그리고 “다만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기왕이면 좋은 대학 가야지”,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지?”가 붙죠.(웃음)
엄청난 압력이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우리를 위한다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죠.
사랑은 원조물자 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무에 물 주고 싶다고 열 바가지 주면 뿌리가 썩습니다.
나무를 키우듯이, 뜨거운 냉정함으로 자녀가 자신만의 뿌리를 내리고,
고유한 개성을 꽃피울 수 있도록 참아주는 것,
애가 타면서도 자신을 절제하고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봐 주는 것,
그게 부모님의 가장 훌륭한 자세 아닐까요?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첫마음 대로, 영혼이 부르는 대로
과감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합리화되고 타협하게 됩니다.
실 한 올이 내 발 하나를 묶고 있으면 쉽게 끊어버릴 수 있지만,
거미줄처럼 엮여오면 그 인연망들이 나를 꽁꽁 묶어 버립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죠.
제가 말은 이렇게 우아하게 하고 있지만,(웃음)
힘든 일도 있었죠. 유혹도 많이 있었죠.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좋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맑은 영혼을 가진 좋은 친구가 없었다면
그 험한 수배길, 24시간 철야노동을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안기부 지하감옥에서 고문 당할 때, 점점 흐려지는 의식 속에
자꾸 헛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 동지들 이름만은 불지 않으려고
자결을 시도한 자국이 지금도 몸에 남아 있습니다.
석방되어 나오니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어금니가 다 닳아있더라고요.
감옥도 감옥이지만 분쟁지역 돌면 여기저기 군인들한테
얻어 터지면서도 비행기 값, 빚 걱정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함께 걸어가는 친구,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인맥관리, 친한 이익관계 친구가 아닙니다.
조폭적 의리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첫마음을 잃지 않도록 북돋고, 때론 냉정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전적으로 나를 믿고 신뢰하고 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는 거죠.
선생님 말씀대로 살아보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두려움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는 별난 사람이 아닙니다. 겁도 많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으면 첫마음 못 지킵니다.
상처가 희망입니다.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을 때가 젊을 때죠.
상처가 없이 온전한 것은 온실 속이죠.
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이, 스펙이, 학교 자격증이
이 변화 빠른 세상에서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줄까요?
결코 지켜주지 못합니다.
비바람치는 폭풍과 바람이 여러분이 살 세상입니다.
30년 후에 무엇이 좋다, 그것을 누가 아나요?
뉴욕 월가가 무너질지 누가 알았습니까?
자연에는 진공상태가 없습니다.
제가 농사를 조금 하고 있는데, 텃밭을 일구다가 씨를 뿌려야지 했는데
갑자기 전쟁이 터져서 날아갔다 다시 돌아와보니 쑥대밭이 되어 있습니다.
뭔가를 비워두면 생태계가 삼투압처럼 밀고 들어옵니다.
사회에도 권력에도 진공상태가 없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없으면, 힘 있는 자들이 권력이건 사회건 다 장악하죠.
시민들의 삶의 주권을 함부로 하는 것에 발언하고 비판하고
관심 갖고 저항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그대로 따라갑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더 각성하려 하지 않을 때,
피투성이로 싸워나가지 않을 때,
이미 우두두 달려가는 거대 사회 시스템이 내 안으로 다 파고들게 됩니다.
이 사회가 옳다면 적응하십시오.
이런자리 다시는 오지 말고 스펙 쌓으십시오.
아니라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주어진 질서와 타협하지 말고 도전하고 부딪치십시오.
살아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입니다.
저항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나아갑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닙니다.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를 끝없는 두려움과 공포의 노예로 만듭니다.
이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네가 트랙을 달리지 않으면 영원히 루저된다.
공부의 신이 되라며 끝없는 공포감을 주입합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무지해지고, 스펙쌓고 올라갈수록 두려워집니다.
대학생 때 나이는 젊지만 청춘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한창 때인 나이에 졸업 앞둔 나이만 되도 때가 늦은 것처럼 느끼죠.

걷다가 넘어지면 무릎이 조금 까질 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면 좀더 심하게 까집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중경상을 입고요.
헬기를 타고 가다 떨어지면 죽음입니다.
미국 경제는 제트기를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금융위기가 이번에 터진 겁니다.
지금 여기 오신 대학생분들은 아직 자전거 타고 있는 정도인데
넘어져봤자 팔꿈치 조금 까지는 정도입니다.
여기서 고속도로 타고 헬기 타면 돌아설 수 없습니다.
끝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과감히 맞서십시오.
우리는 너무 빨리 늙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쫓겨가 봤자 대학원가고 계속 삶을 유보할 것 아닙니까?
걱정 마십시오. 초원이 불편해 보여도 초원으로 가기만 하면
자기 리듬대로 살 수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거고요.
곧 업데이트 될 3부에서 이어집니다.